학교 교장선생님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도 많고 전학도 많았던 어린 시절 우리집은 늘 학교 관사 아니면 일반 주택이었다. 결혼해서도 앞마당이 시골 텃밭 같은 시댁 주택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고 십년 뒤 분가한 뒤 처음 고층 아파트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집이 2층인지라 본의아니게 늘 땅 가까이서 살아온 셈이다.
캐나다에서 처음 살아본 집은 타운 하우스였다. 캐나다의 타운하우스는 2채 또는 6채 정도까지 벽을 붙이고 있는 일동의 공동주택이다. 매달 관리비를 내고 공동관리를 받으니 편한 점도 있고 단독주택의 장점도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동생활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고 실내 구조가 천편일률적이고 무엇보다 마당도 좁다. 지은 지 오래된 타운하우스는 공동부담으로 수리할 곳이 많이 생겨나기도 한다. 우리가 살던 타운하우스는 숲이 우거지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동네였지만 어느새 대학가는 아이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많이 불편하였다. 어느날 이 집을 팔고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캐나다에는 MLS (multiple listing service)라는 부동산 리스팅 용 공식 사이트가 있어서 거의 모든 매물이 이 사이트에 올라와 있어 미리 들어가보고 위치와 가격과 집안 사진이나 동영상 까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참고: https://www.realtor.ca/mls
나의 취미생활 중 하나는 이 사이트에 들어가 집구경하는 것이다. 내 집을 팔거나 사지 않는 평소에서 가끔 들어가보고 집안 사진 구경을 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왜 진작에 건축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상업미술이나 하다못해 베이킹이나 의상 디자인 쪽 공부를 하지 않았는지~ 그때는 몰랐다.
캐나다에서 주택 구입 과정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리얼터 (부동산 중개인)을 선정하고 함께 집을 보고 선정한 다음에 그 집에 대한 오퍼 (구매 희망가격)을 문서로 넣고 약 2주 정도 기간 동안에 내가 정한 조건들이 해제되게 되면 (이 조건에는 나의 자금조달이나 사려는 집에 대한 인스펙션이 포함된다) 이후 5~10프로의 계약금을 리얼터 회사에 납부하고 정식으로 계약하게 된다. 그리고 이사 날짜에 맞추어 변호사 (또는 공증인)을 통해 잔금 납부하고 이사한다. 따라서 집을 사고 파는 과정에 중개인과 변호사가 꼭 필요하며, 특히 여기서 중개인 수수료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중개 수수료는 파는 사람이 부담해서 바이어와 셀러 양쪽 중개인이 나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하우스로 이사 가기로 마음을 먹고 리얼터와 상의한 후 나는 나름대로 mls 사이트에서 집 검색을 하며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부동산은 location, location, location 이라는 구호도 있듯이 제일 중요한 위치선정에 다음으로는 가격이 문제였다. 그래서 만든 수십 건의 리스트을 든 채 리얼터가 소개하는 매물을 보러 가기로 한 날, 리얼터가 우리를 데리고 간 첫 번째 집이 바로 내가 만든 리스트에서 1번 집이었다. 캐나다에서 집을 사려면 백 군데도 더 본다는 말도 있는데 우리는 서너군데 더 가보고선 바로 처음 집으로 낙점했고, 결국 로체스터 길에 있는 그 집을 샀다.
차고에 2대, 드라이버 웨이 까지 6대는 댈 수 있는 주차 공간에 3층 실내에 거실 2개와 다이닝룸, 방이 7개, 화장실 4개, 뒷마당이 아주 넓고 평탄하며, 무엇보다 집의 위치가 아주 좋았다. 이전 주인이 동남아시아 출신인지 집안에 불상과 제사지낸 흔적이 곳곳에 있었지만 수리를 거치고 페인트까지 말끔히 하니 깨끗했다. 다만 두 아이들이 다 큰지라 기숙사로 나가고 군인으로 나가고 하다보니 우리 부부가 살기에 너무 큰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그래서 민박 아이디어를 내고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대개 고층 콘도는 콘크리트로 건설하고 낮은 콘도들과 타운하우스, 단독주택들은 모두 나무로 지어진다. 밴쿠버의 겨울은 우기인지라 거의 매일 비가 오지만 이렇게 나무로 지어진 집 안이 너무도 뽀송하여 나무 주택의 장점에 감탄하게 된다. 지하실도 전혀 습한 느낌이 없다. 물론 잘 못 지어지고 누수가 있는 집은 예외일 터다. 한가지, 나무집의 가장 큰 단점은 방음이 안된다는 거다. 난방과 환기 시스템을 통해 작은 소리도 쉽게 전달이 된다. 민박을 하겠다고 특급호텔 급의 깨끗한 베개와 시트를 준비하고 각 방에 티비와 작은 냉장고 까지 갖추어 놓았건만 2층 안방에서 내린 물소리가 1층은 물론 지하 방에 까지 울러퍼지는 소리를 듣고는 밤중에 화장실 가기가 꺼려지고 까치발을 들고 걸어다니니 남편은 나를 나무랐지만 내 마음이 불편하니 어쩔 수 없었다.
길지 않은 기간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나쁜 기억도 있지만 대개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아직도 교류하는 몇 몇 가족이 있다. 캐나다로 처음 유학 와서 또는 이민 와서 우리 집에 단기간 묵으면서 차를 사고 렌트를 구해 나가고 아이들을 입학시키고 새 직장을 구하는 걸 옆에서 도와주고 나름 열심히 돕다보니 보람도 있었다. 우리도 이민자 아니던가 게다가 나는 이민자 정착서비스 정부기관에서 일한 적도 있지 않은가. 달랑 여행가방 끌고 배낭 메고 아이들 까지 데리고 와서 여기의 모든 물정에 어둡고 겁나고 불안한 마음에 경험자로서 우리가 건네는 한 마디 조언과 작은 도움들이 그들에겐 작지 않았으리라 자부한다. 가진 거 없지만 너무도 성실한 젊은 부부가 생각난다. 학교를 잘 마치고 취직도 하고 영주권까지 최근에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쁘면서도 세월이 이렇게 흐르는구나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가 사서 이사들어간 집 앞마당에 키가 수십 미터도 넘을 듯한 아주 큰 나무가 있었다. 집 앞 나무라기에는 너무 커서 강한 바람에 집쪽으로 무너지지나 않을지, 또 집 벽과 너무 가까워 혹시 뿌리가 지하로 파고들지나 않을지 늘 염려되었다. 캐나다는 토질이 너무 좋아 나무 뿌리가 깊지 않다고들 한다. 아무튼, 여기서는 집안 나무도 쉽게 잘라버릴 수는 없으니 시티에 문의해서 허가가 필요한 사항인지 알아보고 그다음에는 보험이 잘 든 나무 베는 업체를 알아본 다음 어느날 거사를 수행했다.
나무를 자르는 비용은 나무가 서있는 위치나 크기나 나무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데 우리집 나무는 크고 단단하여 아마 거의 삼천불 나올거라고 했지만, 우연히 연락한 업체에서 천불에 해주겠다고 하여 주문했는데 나중에 그 업체 사장이 직접 자르러 와보더니 너무 싼 가격에 직원이 견적낸 것이라며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별탈없이 일을 했다.
남은 나무를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인터넷을 뒤져 혹시 큰 나무 덩어리로 나무 샐러드볼 같은 수공예를 하는 길드 조직에 까지 전화해 보았지만 여의치 않아 결국에는 집앞 나무 더미 앞에 FREE WOOD 라고 붙여 놓으니 수일 만에 조금씩 다 없어졌다. 여기 하우스에 나무 벽난로가 있는 집들에서 손수레와 픽업 가지고 와서 가져가니 서로 좋은 일이 됐다.
하우스에 살면서 이 나무 자르기가 기억에 날만한 큰 행사였고 또 한가지는 뒷마당에서 보낸 소소한 시간들이다. 눈을 감고 뒷마당을 빙 한바퀴 돌아본다. 집 뒤 테라스 쪽에는 작은 나무들과 연산홍, 장미, 튜율립 등이 있었다.
왼쪽으로 돌면 옆집 뒷마당 사이에 키작은 울타리가 있고 울타리를 따라 길게 텃밭이 있었다. 여기서 상추와 깻잎 등을 키워보기도 했지만 원예치인 난 그저 작은 수확에 만족해야 했고 다만 우연히 얻은 씨를 아무렇게나 뿌린 겨자가 너무 크게 자라서 깜짝 놀랐다. 겨자씨 한톨이 얼마나 작은지, 그 씨에서 얼마나 풍성한 잎이 달리는지.
집 뒤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는 덤불 같이 이런 저런 작은 나무들과 풀이 있었는데 특히 여름이면 하이드렌자 (hydrangea)가 푸른 꽃과 보라색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냈다. 푸른색이 정말 아름다웠는데 좋은 사진이 없고나.
다시 집 뒤 한귀퉁이에 원래 자쿠지 (jacuzzi) 스파가 있던 곳. hot tub를 드러낸 자리가 있었다. 그곳을 비워둔 것을 보신 우리의 식물박사 손여사님의 권고로 감자를 심어보기로 했다. 손여사께서 주신 씨감자를 땅 속에 심고 물을 주었더니 뽀로롱 뽀로롱 싹이 났어요~~~ 감자를 언제 캐는지도 모르고 그저 풀이 올라오는 거에 대견해 하다가 뒤늦게 파보니 감자가 들어있기는 했지만 제대로 수확이라고는 할 수 없이 그저 키워봤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뒷마당 잔디에 하도 까마귀 떼들이 마당에 벌레 파먹느라 잔디를 헤치는 바람에 한국에서 음파로 쫒는 장치를 사다 달기도 하고 누군가의 조언에 씨디를 매달아 두기도 했지만 약을 뿌리지 않는 우리에겐 별 효과가 없었다. 그저 같이 살 수 밖에. 잔디 사이사이로 쉴새없이 자라나는 잡초를 뽑느라 해 질녘에 둘이 목욕탕 의자를 가져다 앉아 풀을 뽑던 기억도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여기서 3년을 채 못살고 우리는 다시 짐을 싸서 이 집 실내면적의 3분의 1보다 작은 콘도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떠난 후 텅 빈 공간, 민박으로 채우려했지만 집의 소음과 더불어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예상 외의 스트레스도 있었고, 끊임없이 앞뒤 좌우를 관리해야 하는 책임들과 비용, 무엇보다 단순하고 간단한 삶을 추구하는 내 목적에는 너무 큰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후 밴쿠버 집값이 하늘을 모르고 치솟아 이 집도 여러 배 이상으로 뛰었다는 뒷말도 들었지만 이상하게 배가 아프지도 않았고 별로 후회도 안되는 거 보면 그저 인연이 거기까지였구나 싶다. 이 세상에 영원히 내 것인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아니한가.
어린 시절 내 인생에서 나온 짐을 수트케이스 딱 하나에 꾸려서 돌아다니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작은 콘도로 들어가면서 하우스 짐을 거의 정리한 우리는 사는 동안에도 내내 짐을 정리하고 의류도 많이 도네이션해왔다. 이제 이 콘도마저 정리하는 와중이다. 딱 수트케이스 한 개로 정리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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