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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살이

커피, 추억 한 모금

by 밴쿠버제니 2022. 8. 11.

커피를 물 처럼 마시던 시절이 나도 있었다.  딱히 커피 맛을 알고 마셨다라기보다는 광화문에 있던 직장 사무실의 캔틴에서 (당시 우리는 canteen이라 불렀다. 찾아보니 지금은 탕비실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왠지 생소하다) 아무튼, 커피와 차와 간식 까지 널려있던 그곳에서 직장 동료들, 특히 외국 보스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시시하고 개인적인 수다를 떨던 기억이 있다. 

 

내가 캔틴에 갈 때면 왜 늘 커피는 바닥일까.  커피메이커에 물을 채우고 Folgers 크고 빨간 통에서 누런 필터에 한 스픈 두 스푼 커피 가루를 넣고서 둥근 유리팟에 커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조용한 시간이 사실은 좋았다.  누군가 휴가를 다녀와서 내놓은 Kona 커피맛을 보며 와이키키 바닷가를 상상하기도 하고, 그 비싸다는 고양이 배설물(에서 나온 커피열매로 만든) 커피를 아주 조금씩 나눠마시며 웃던 날들이다. 

 

이후 스타벅스와 커피빈이 앞다투어 한국에 들어오고 콩다방의 카푸치노에 빠져있던 얼마간의 날들을 뒤로하고 한국을 떠났다.  마지막 직장이 있던 강남 스타타워의 커피빈은 아직도 있으려나~~  (찾아보니 스타타워는 파이낸스센터로 이름이 바뀌었고 커피빈은 사라지고 폴바셋과 아르띠제 같은 고급 커피숍이 들어서 있다)

직장 초년병 시절, 전직원이 괌으로 소풍을 갔다 (생각해보니 그옛날 복지가 좋은 직장에 다닌 거 같다ㅎㅎ) 삼십년도 휠씬 넘은 이 사진 속 여직원들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젊은 우리들의 미소가 햇살 처럼 찬란하다. 역시 삼십년도 넘은 오른쪽 괌 사진 속 줄무늬 티는 아직도 내 옷장에 있어 종종 꺼내입는다. 필요없는 것 지니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내가 오래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옷가지 중 하나다.  손에 든 것은 캔커피였던가~
남편과 휴가로 간 하와이에서도 같은 티셔츠~ㅎㅎ 오른쪽 해변은 또 다른 시기의 와이키키다 경포해수욕장과는 사뭇 다르다. 커피에서 티셔츠로, 괌에서 하와이로 다시 경포로 생각이 두서없이 날아다닌다. 추억이란 그런 거다.

남편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전혀.  오전에 한잔씩 마시다가 그나마도 딱 끊었다.  커피를 마신 날 몇 번 불면의 밤을 보내고 커피가 그 원인임을 지목한 이후 벌써 십년도 넘은 거 같다.  그래서 단체로 맥도날드나 팀호튼즈 (Tim Horton's)를 갈 때 (맥도날드 커피가 생각보다 괜찮다) 다들 1불 짜리 커피, 또는 가끔은 프로모션에 걸린 무료 시니어 커피를 마실 때도 남편의 선택은 언제나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다.  때때로 녹차를 마시기도 하는데 녹차에도 카페인이 많다는 것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 커피가 누명을 쓰고 있슴에 틀림이 없다. 

캐나다에 살면서 커피 마시지 않는 것은 국제 매너 (?)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말도 안되는 말로 설득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본인의 선택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문제는 물처럼 커피를 마시던 나도 점점 커피에서 멀어졌다는 거다.  집에도 커피를 두지 않게되고, 찻집에서도 커피 대신 카모마일이나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시애틀의 Pike Place Market에 있는 첫번째 스타벅스는 1971년에 시작되었다.
아이들과 시애틀 갔을 때 최초 스타벅스 앞을 지나기만 하고 한잔 마시지 않은 것이 이제사 슬그머니 후회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이곳이 어디인가.  커피를 멀리하고서는 인간일 수 없는 마을에 있지 않은가~~ㅎ  그 때문일까 문득 그 좋은 커피향을 멀리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는다.  요즈음은 집에서 조금씩 커피를 마시고 카페에서도 남들 처럼 라떼를 외치면서 잃었던 커피에의 추억을 되살리고 있는 중이다. 


*************

 

최근 커피의 도시, 강릉의 찻집을 한번씩 가보고 있다.   아직 커피를 마시지는 않지만 보기보다 감성적이고 동행에 주저함이 없는 남편과, 나 또한 아직은 커피 맛 보다는 그 풍경과 분위기를 느끼는 정도에 불과한 찻집 (카페) 순례다.  언젠가는 커피 맛과 향을 온전히 이해하고 나만의 커피를 찾으리라 기대하며~~  


강릉항 할리스 커피


강릉에 처음 도착해서 신세진(?) 커피숍이다.  인터넷이 설치되기 전 이틀 정도 죽치며 가구와 생활용품을 폭풍서치 하던 곳.  사실 이곳에서 우리가 마신 것은 커피가 아니고 카모마일 티다.  1불 짜리 맥도날드보다 여러 배 비싼 커피와 티가 한국의 현실임을 실감하면서 또한 커피값 한잔으로 보기에 황송할 정도로 멋진 뷰를 자랑하는 곳, 이른 시간대라 그런지 한산하여 덜 미안했던 카페다.  3면이 통창으로 통해 드넓은 동해바다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매장이 넓어 다양하고 편한 좌석들이 많아서 강릉으로 손님이 오시면 거의 맨먼저 모시고 가는 장소다.

3면이 바다로 되어있어 커피 보다는 뷰 맛집인 카페다.
흐린 날이다. 안목해수욕장과 너머 송정 솔밭까지 보인다
강릉항 마리나

카페 나인

강릉에서 안목해변이 커피거리로 유명하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이곳이 아니더라도 강릉 전역에는 멋진 카페들이 즐비하다.  지인 덕에 거의 카페가 있을 거 같지 않은 위치에 숨어있는 한옥 카페 한곳를 만났다.  여름이 아직은 덜 무르익은 어느 날, 구정 막국수를 먹고 찾은 구정면의 카페 나인이다.  아주 오랜만에, 이제 막 커피에 입문한 사람처럼 내 앞으로 따스한 카페라떼 한잔을 시킨 곳이기도 하다 ㅎㅎ

멀리 동해고속도로가 보이고, 입구에 살림집 같아보이는 옆으로 차를 세우고  솔밭으로 들어간다
아담한 솔밭 오솔길 지나 차분한 한옥 한 채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카페다
카페 앞 정원
솔밭과 한옥이 마침 쏟아진 햇빛 덕분에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친구 부부와 담소하느라 카페 앞마당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카페 뒷편에 근사한 테라스와 연못이 있는 풍경이다.  아래 사진과 설명을 가져왔다.  담 기회에는 좀더 자세히 천천히 구경하고 싶은 곳이다.  커피 맛은? 잘 모르겠다.  아직은 분위기로 마시는지라~

이곳은 카페 나인 2호점이다. 1호점은 강릉이 아닌 인천에 있다. 주인이 귀촌을 위해 수년 전 강릉 구정면에 장만해뒀던 한옥에 ‘카페 나인 2호점’이라는 간판을 단 게 2013년이다. 가족이 함께 운영해 더욱 따뜻한 분위기다. 젊은 딸이 직화 방식으로 생두를 소량씩 로스팅하고 와플을 굽고, 멋쟁이 어머니가 손님을 응대한다. 한옥에 어울리는 가족적인 분위기다.

 

테라로사

강릉에서 커피 하면 테라로사를 빼놓을 수가 없겠다.   한국에 왔다가 처음 구정면 깡시골에 있던 커피공장을 방문했을 때의 낯설고도 신선했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한데 아마 십년 전 쯤인 듯 하다. 

강릉에 다시 와보니 테라로사가 시내에도 있고 바닷가에도 있다.  그새 시골 공장에는 박물관도 들어서 있다 하니 슬기로운 커피 탐구생활을 위한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아래는 오다가다 두어번 들린 사천 테라로사.  분위기 사진만 몇 장 올리고 이만 총총..

멀리 바다를 보며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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