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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_한국

태풍 속으로 2박3일 (I)

by 밴쿠버제니 2022. 9. 9.

사실 추석은 내게 그리 큰 명절이 아니었다.
집안이 넓지 않은 친정에서는 간소한 제사를 지내는 걸로 끝이었고
넓디 넓은 시댁에서는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가 없었다.
캐나다 생활에서 추석은 근처 한인마트에서 송편 한 팩 사다 먹는 걸로 끝이었으니까.

한국살이를 시작한 올해 추석에는 
그동안 못가던 성묘를 하고

네 분 부모님 중 딱 한 분 남으신~ 한국살이의 이유가 되기도 한~
이제 구순에 접어드신 친정엄마의 생신에 가는 것이 큰 행사로 다가왔다.

마침 추석 전 주가 생신인지라 
겸사겸사 나들이를 계획했는데
한남로 아닌 힌남노라는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친정이 있는 부산으로~

힌남노 (Hinnamnor)는 라오스 캄무안주에 위치한 국립공원인 '힌남노 국립자연보호구역'에서 딴 명칭이다.  태풍에 먼 나라의 국립공원 이름이 붙은 이유는 라오스를 포함한 태풍위원회 회원국이 함께 태풍의 이름을 정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라오스를 포함해 캄보디아, 중국, 북한, 홍콩, 일본, 마카오, 말레이시아, 미크로네시아, 필리핀, 태국, 미국, 베트남 등 14개국이 태풍위원회의 회원국이다.  국가별로 10개씩 제출한 총 140개가 각 조 28개씩 5개조로 구성되고 1조부터 5조까지 순차적으로 태풍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140개를 모두 사용하고 나면 1번부터 다시 사용한다. (더 자세하고 재밌는 내용은 여기서: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90215484995263) 

방송에서 연일 시시각각 태풍 경고를 하고
전화 너머 극구 말리시는 엄마의 말씀을 뒤로한 채 우리는 '태풍 속으로' 길을 나섰다.

 

9월 4일 강릉에서 천안으로 

 

전날 까지 맑고 화창하던 날씨에 음식 준비를 하고 천안공원묘원에 누워계신 시부모님을 뵈러가는 날
이른 아침 강릉은 아니나 다를까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했다. 
대관령을 오르는데 빗길에 안개가 자욱했다.  

서쪽으로 나아갈수록 비는 그치고 중부고속도로 상에서도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한다.
천안공원묘원에는 부슬비가 약간씩 내렸지만,

서울에서 온 동생들과 옹기종기 묘소 옆에서 서로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고 식사하기에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인물사진이라 아래 사진은 가져왔다.  지난 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도 추가.

한국에 여러 공원 묘원이 있겠지만, 천안공원묘원은 갈 때 마다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산 전체를 다 덮고도 남을 넓은 터에 수만 기의 묘지가 펼쳐져 있다.  아주 정비가 잘 되어있고 풍광도 수려하다.  그러나 좀더 공간을 현명하게 활용할 방안은 없을건가.  산 비탈 지형을 활용해서 트레일도 만들고 피크닉 테이블을 구비한 쉼터를 군데군데 만든다면 이름뿐이 아닌 진정한 공원이 되지 않으려나 싶다.  봉분을 쌓기보다 비석만 있어 자유롭게 걸어다니던 밴쿠버 우리 동네 묘지가 생각난다.  

 

아무튼, 성묘를 마친 우리는 부산으로 출발했다. 
이제 비는 아주 그치고 고속도로는 말라있어 내일 태풍이 부산에 상륙한다는 방송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9월 5일 해운대

 

잘난 자식은 나라 꺼, 성공한 자식은 장모 꺼, 아프고 못난 자식은 내꺼라지만
뭐니뭐니해도 가까이 살고있는 자식이 최고 효자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시차가 14시간이나 차이가 나는 곳에서 살고 있던 하나 뿐인 딸인 나는

변명의 여지없는 상 불효자인 셈이다.
태풍에 뭐하러 오냐는 말씀은 너무도 보고 싶구나로 읽어야 한다. 
그러길 잘 했다.

내일 새벽 부산을 강타할 거라는 방송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부슬비가 약간씩 내리는 해운대로 드라이브를 나섰다.

조선호텔과 동백섬

친정이 바로 영화의 전당과 신세계 맞은 편이라 자주 오가는 해운대 지역이다.
내 오랜 기억 속 해운대는 조선호텔과 동백섬~ 
넓은 백사장 끝 벌판에 외롭게 서있던 조선호텔인데

이제는 주변의 빌딩들이 해운대에 벽을 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미포 쪽으로 높이 솟아있는 세 빌딩은 101층과 85층의 엘시티 (LCT) 건물이다. 

그야말로 마천루, Skycraper 하늘을 긁을 듯한 기세다.

태풍이 올 조짐이 보인다
미포 방향
높은 파도를 구경나온 주민들이 보인다. LCT앞으로 팔레드시즈와 파라다이스호텔이 보인다

9월 5일 송정


해운대에서 송정으로 넘어가는 달맞이길은 부산에서 보석과 같은 언덕길이다.
시간이 있다면 걸어서 오르고 싶은 길인데,
옛날에도 울창했던 나무가 이제는 더 자라 깊은 나무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천천히 드라이브하여 송정에 도착했다.
엄마가 기억하시는 송정은 정말 작은 어촌마을인데 이제는 부산 못지 않는 시가지로 변모해있다.

송정바다도 해운대 못지 않게 파도가 높다.
이 바다가 그 바다 아니겠냐지만 그래도 그렇지가 않다(고 우긴다)

저멀리 사진촬영 중인 일행이 보인다
이 파도에 서핑보드는 많이 위험해 보인다

태풍이 담날 새벽에 상륙할 거라는 뉴스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미리 예약해 두었던 LCT 바로 옆 호텔로 일찌감치 돌아온 우리는
부산 해운대에 빌딩풍이 겁나다는데~
15층 객실은 너무 높은 거 아닌가~
101층이 설마 우리쪽으로 기우뚱 하는 것은 아니겠지~

지하 2층에 둔 차가 침수되는 거는 아니겠지~
걱정은 되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호텔 지하 주차장에 차수벽 (물막이판)이 설치될 거니 차량이 통제된다는 방송에 약간 안심하며
저녁 내내 티비 뉴스를 틀어두니
그 어느 때 보다 태풍에 대한 상식을 쌓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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