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보고파서
강원도음식 생각나서
심심하니 드라이브나 하려고
3시간 달려서 오던 강릉에서
6개월째 살고있다.
어제 오후 다녀왔던 솔밭을 오늘도 나가볼 수 있고
어제 보았던 광대한 바다가 내 눈 앞에 그대로 일렁이고 있는 것이
영어로 딱 적당한 표현이 있다
surreal
다소 초현실적인 느낌이랄까
매일 새롭고, 매일 꿈 같다.
당연한 것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
그만큼 나의 적응력이 더딘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에게
강릉에서 발을 땅에 딛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일깨워주는 친구가 있다.
그는 사실 남편의 동창 친구와 그 부인이다.
강릉 시내 학교로 등교하려면 몇 시간을 걸어야하는 외곽의 아주 깡촌에 살던 그가 서울대 입학했다니
아마 그옛날 시골마을 입구에는 자랑스런 플랭카드가 걸렸으리라.
그는 강릉에서 자리잡고 서울내기 아름다운 부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평생을 전문가로 일해왔으며
여전히 전문인으로 본업을 유지하는 가운데 또 하나의 직업, 농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강릉시내에서 가까우나 막상 가보면 아주 한적한 시골 같은 땅에 직접 지은 집이 있고
집 앞 텃밭에는 온갖 야채와 나무가 그득하다.
농사일을 전혀 모르는 내 눈에도
집과 텃밭이 이정도로 건사되려면 주인의 손길이 얼마나 닿아야할지 짐작된다.
이 집의 텃밭은
여태 살면서 내가 처음으로 직접 들어가 수확을 해본 곳이다.
깻잎이나 고추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따가라는 주인의 부르심에 따라
여름 햇살이 아직 뜨거운 어느날 오후 긴팔 긴바지로 무장하고 비닐 봉지를 챙겨 이 집 텃밭으로 출동했다.
어떻게 따는지 설명을 듣고서
여리고 부드러운 잎들을 똑똑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따고
고추도 빨간 고추, 파란 고추 열심히 크게 한 봉지 따고서 밭에서 나왔는데
내가 지나온 자리에 그대로 깻잎이 넘실대니~ 이 무슨 조화인지.
하나씩 따는 재미에 밭에서 나오자니 마치 어린시절 놀던 친구와 헤어지는 듯 서운한 마음까지 드니
내가 농사에 적성이 맞는 거였나~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수확한 깻잎 사진을 남기지 않아 아쉽다.
내가 딴 깻잎은 양은 많으나 다소 흐트러져 있었고
남편이 반대편에서 딴 깻잎은 일정한 크기에 한잎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했다~ㅎ
집에 가보면 때때로 수확한 농작물이 마당에 널려있다.
농사 과정이 짐작조차 안되는 내 눈에도 귀해보이는데
긴 시간 직접 정성으로 심고 보살피고 거둔 이에게 이들은~~ 어떤 존재로 다가올까
어느날은 두 부부가 뒷산에 올라 줏은 밤이 있으니 가지러 오라고 한다.
며칠 전 순포습지 산책을 하다 밤나무 아래 떨어진 밤을 줏다가 한움큼 찾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나중에 보니 모기가 열군데쯤 팔다리를 공격하고 간 터였다.
마치 맞겨둔 물건 찾듯이 날름 받아와서 며칠째 쪄먹는 중이다 ㅎ
그들의 수고와 베품을 품은 밤이 무척이나 고소하고 달다.
지난 여름 한날, 멀리 사는 친구들이 모인 날
앞마당의 정자 (퍼고라) 아래
안주인의 정성이 넘치는 건강하고도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지고
흐믓한 표정의 친구는 바베큐틀에 숯을 채우고 고기를 굽는데
자주 만나진 못해도 서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 얼굴 위로
고요하고 잔잔한 평화가 햇살처럼 번지는 느낌이 들었다.
맛있게 먹고 소화시킬 겸 뒷산에도 올랐다.
남편 친구들이지만 나이 차가 있어서인지 내 마음에는 그저 집안 오라버니들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먹고 마시다 질펀한 술자리로 이어지지 않는 모임이기에 늘 부담없이 동참하게 된다.
식사 후 이렇게 산책하며 담소하는 남자들 모임에 끼어있을 수 있으니 감사하다.
잠시 뒷산에 오르려던 발길이
샌드파인 골프장 옆에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 시루봉까지 이어졌다.
시루봉은 해발 87미터로 아주 낮은 동네 뒷산인데
그 위에 오르니 저멀리 경포호수와 경포해변이 한 눈에 들어왔다.
돌아오는 길
길 가의 나무와 열매를 찾아보며
실개천에서 놀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고
동네 주변 없어진 집들과 아직도 남아 있는 기와집과 또 그속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 까지
서로 주고 받으며 돌아오는 길
한여름 땡볕 아래 이마와 등에는 땀이 흘렀지만
발길은 가볍고
마음은 평온했다.
강릉으로 우리를 부른 것은
멋진 바다나 울창한 솔밭보다
이런 만남이지 않았을까 뒤늦게 깨달으며
돌아오는 길
나도 열심히 발을 맞추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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