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밤을 보낸 자스퍼의 캠프 그라운드를 떠나는 아침이다.
록키에서의 마지막이 될 오늘을 준비하는 시간. 눈부신 아침 햇살 아래 구름이 낮게 걸려있다.
록키를 떠나기가 너무 아쉽다.
밴쿠버의 정신없던 나날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꿈과 전설 속에서 보낸 지난 일주일이었다.
록키 한 귀퉁이 호수와 숲이 이어지는 조용한 곳에 통나무 오두막을 짓고 살면 어떠려나~~
잠시 공상 속으로 빠져들며 16번 고속도로로 올라서는데 웅장한 산과 강이 동쪽으로 향하는 우리를 따라온다.
아직도 록키임을 알려주며 돌아오라고 손짓하는 듯 하다.
자스퍼에서 에드몬톤 까지는 16번 고속도로로 동진하여 약 360킬로 떨어져 있다.
하루에 가기에 별로 먼 거리는 아니지만 우리는 애초에 에드몬톤에서 이틀 정도 머물기로 했기에 느긋하게 길을 간다. 온천이나 사우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쿠트니에서의 좋은 기억이 있기에 (라디움 핫 스프링), 자스퍼 근처 온천에 들리기로 한다. 바로 미에트 온천 Miette Hot Springs 이다.
이 온천은 자스퍼 타운에서 아싸바스카 강을 따라 달리는 16번 도로를 타고 45킬로 (30분 정도) 가서 우회전해야한다. 비교적 잘 포장된 산길로 약 17킬로 정도 들어가는데 역시 30분은 걸린다.
이곳은 미에트 온천 입구에 자리잡은 시설이다. 기록을 보건데 무려 1938년 부터 있었다고 한다. 캐빈과 샬레, 모텔 등 세 가지 타입의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고 멋진 레스토랑과 선물가게도 따로 있다. 이런 깊숙한 산골에서 묵으며 온천도 하고 하이킹도 하면 속세를 떠나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겠다.
30분 넘게 경치 좋은 산길을 구비구비 들어와 온천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온천은 굳게 닫혀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고속도로에서 꺾어지는 입구에 Pools Closed 라는 싸인이 있었는데 못보고 지나쳤고, 미리 보았더라도 온천 Hot springs와 풀이 잘 연결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고..
아무튼 기대했던 온천은 못하고 대신 주변 경치 구경을 하고 늦은 점심도 챙겨 먹는다.
미에트 온천은 정부가 관장하는 온천인데 대개 5월 부터 10월 초순 까지 개장한다. 뒤늦게 기록을 찾아보니 올해 시즌에 이 온천이 문을 닫은 이유는 야외 풀의 라이프 가드와 캐쉬어 등 오픈 시즌에만 일을 할 직원들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나와있다. 지난 18개월 동안 코로나로 인해 라이프가드나 CPR코스 등이 모두 취소된 탓도 있겠다.
https://www.pc.gc.ca/en/voyage-travel/promotion/sources-springs/miette
깊은 산속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뜨끈뜨끈한 야외 풀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늘 타이밍이 맞을 수는 없는 법. 아쉬움을 뒤로하고 천천히 다시 산길을 돌아나오는데 나오는 길 구비구비 고요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에드몬톤 Edmonton 이다.
록키에 와서 자스퍼 까지 오더라도 다시 내려가 캘거리는 갔지만 이곳 에드몬톤은 올 일이 없었다. 나로서는 삼십년이 넘은 추억의 장소이기에 이번에는 꼭 지나가리라 마음 먹고 이쪽 루트를 택했다.
지난밤에 에드몬톤 도착하면 묵을 곳을 정하느라 여러 예약사이트를 누비다가 결국 시내에 있는 Sandman Signature Hotel로 정했다. 에드몬톤 주변에도 캠프장이 있으련만 왠지 이 도시에서는 호텔에서 묵어야말 할 거 같아 부킹 닷컴, 트립 어드바이저, 호텔 닷컴, 엑스피디아 등등 여러 사이트에서 비교해본 결과 4-star이면서 가격이 100불을 넘지 않고 사진도 멋지고 평도 좋고 위치도 바로 시내 한복판인 이곳으로 정하고 이틀 밤 예약을 했었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임이 도착해 보고야 알았다.
아래는 에드몬톤 들어가는 길과 다운타운 사진들이다.
로저스 플레이스 Rogers Place를 보니 에드몬톤의 전설적인 하키선수 웨인 그레스키 Wayne Gretzky가 떠오른다.
아마 다 알겠지만 이 선수는 NHL 에드몬톤 오일러스 Oilers 의 하키 영웅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불리운다. 밴쿠버에는 커낙스 Canucks가 있지만 에드몬톤은 오일러스다 (아마 알버타주 북쪽 정유지대로 인해 그 이름이 붙은 듯).
웨인 그레스키가 활약하던 1980년대 당시 (1979-1988) 하키 우승컵인 스탠리 컵을 네 번이나 가져오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나도 에드몬톤에서 당시 웨인 그레스키가 나오는 경기를 딱 한번 구경갔었다. 하키가 뭔지도 모른채 그냥 뒤따라 갔는데 아이스링크에서 벌어지는 격투기 같은 게임과 관중들의 광적인 응원에 너무 놀란 기억이 있다.
2018년 2월에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을 때 마침 한국에 있었다. 2010년 밴쿠버에서의 축제 같던 동계올림픽을 보았던지라 나와 남편은 이 올림픽을 놓칠세라 열심히 구경다녔다. 준결승과 결승은 티켓값이 너무 비싸 예선전과 연습 경기 표, 그것도 뒷줄 위주로 사서 다녔지만 그것도 즐거웠다. 여기서 한 마디. 귀한 표를 예매해서 경기장에 가보니 뒤줄에 앉은 몇몇 외국인들과 우리 부부 앞에 비어있던 좋은 자리로 뒤늦게 단체로 들어오신 노인분들 수십명이 너무 지루해 하다가 중간에 자리를 뜨는 걸 보니 분명 무료로 동원해 온 듯하여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쩌랴.
하키 얘기가 길어졌다. 이제는 오늘 묵을 호텔을 찾아갈 차례다.
시티 센타를 들어서니 바로 뒤에 샌드맨 시그니쳐라는 글이 연한 브라운색 빌딩에 써져 있다.
에드몬톤 시내 길거리는 온통 공사 중이라 길도 엄청 막혀 막혔다. 밴쿠버와 마찬가지로 일방통행이 많아 찾기도 쉽지 않았지만 툭하면 제멋대로인 네비게이터가 다행히 이번에는 성실히 일을 해서 호텔에는 잘 도착했다.
저녁시간 다운타운은 차들만 황급히 지나가고 길거리엔 사람이 거의 없고 너무 적막했다.
시내 호텔이라 넉넉한 입구가 없어 잠시 차를 댈 수 있는 곳에 대놓고 도어맨에게 부탁해놓고 짐을 옮겼다.
호텔은 주차료를 따로 받고 있었다. 하루 밤에 25불씩 (시내호텔이니 이걸 기대했어야했는데 예약을 너무 서둘렀다)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다가 그냥 호텔에 대기로 하고 체크인 하는데 그동안 캠프생활에 익숙해진 짐들에서 호텔로 들어가기 위한 짐을 찾아 꾸리는데 아주 번거로왔다.
호텔은 너무 오래 되어 방 열쇠를 돌려서 넣고 불은 수동으로 켜야했고 냉난방기에서는 소리가 덜덜 났다.
화장실에 온수는 제대로 나왔지만 온수탭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미리 전화해서 알리고 (수리 기사가 퇴근해서 담날에나 고쳐줄 수 있다고 했다) 혹시나 싶어 사진까지 찍어두었다. 내가 고장낸 거 아니라는 증거다. 디파짓을 무려 이틀치 호텔비의 2배나 징수당했으므로.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호텔 들어온 것에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샤워를 하고 두 개의 퀸 배드 중 하나에 하얀 시트 위에 널찍이 대자로 눕고 보니
역시 침대가 이런 거 였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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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몬톤에는 이종사촌 언니가 한 분 살고 계신다.
여러 가지 이유로 홀로 살고 계신 언니도 한번 뵈어야 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에드몬톤에 도착하기 까지도 연락을 못드렸다.
혹시나 해서 호텔서 전화를 드려보니 언니가 꺄악 소리를 지르면서 얼른 오라는 명령~
결국 호텔 생활은 하루 밤으로 접고 내일 아침 체크아웃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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