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밤을 보낸 토론토를 떠나기로 한다.
토론토는 전에도 몇 번 온 적 있지만, 왠지 늘 생소하고 삭막하고 시끄러우면서도 외로운 도시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도시라서 그런가 아님 너무 커서 그런가. 아니 난 서울 같이 복잡한 동네에서도 오래 살지 않았던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자꾸 밴쿠버와 토론토를 비교하고 있는 거 같다. 산과 강과 바다와 공원이 어우러진 밴쿠버 생각이 자꾸 난다.
토론토를 제대로 둘러보지도 않고 평가해 버린다는 것은 미안하지만 내가 받은 인상이 그렇다는 거다. 어쩌면 훗날 우리가 토론토로 이사와서 정붙이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알겠는가 우리의 앞날을.
이대로 떠나기는 아쉬워 토론토에서 가볼 곳을 서치하다 카사 로마 Casa Loma를 들리기로 한다.
간밤에 묵었던 캠프그라운드에서 토론토 구 도심에 있는 카사로마 까지는 약 40분 거리다.
공사구간과 정체를 뚫고 이 동네로 들어서자, 토론토의 삭막함 운운한 나의 구시렁거림에 취소 취소 취소 버튼을 계속 눌러야했다.
길거리에는 과하지 않지만 필요한 것이 다 있고 하나하나 특색있는 가게들~ 찻집 파티오에서 담소하고 갓 구운 빵을 살 수 있고 예쁜 아기옷도 걸려있는 특색있는 길거리 가게가 늘어선 거리가 참 좋다~ 이런 가게들을 지나 주택가로 들어서니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가 지키는 오래된 동네가 우리를 맞는다. 우거진 가로수 너머로 크고 고풍스러우며, 단순하여 더 멋진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차 안에서 얼른 카메라를 들고 다양한 집 모양을 찍고 싶었지만 대부분 놓치고 만다. 게다가 나무 뒤에 숨어있어 자세히 보아야 주택인 줄 안다. 물론 밴쿠버 웨스트나 웨스트 밴쿠버에 가도 만날 수 있는 거리 풍경이고 집들이다. 그래서 더 반가웠나보다.
이제 카사 로마 Casa Loma에 도착한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비가 무조건 종일 주차비로 15불을 받는다. 동네 길가에 대고 걸어오고 싶었지만, 토론토 세수 (tax revenue)에 일조한다는 생각으로 말없이 지불한다.
카사 로마 Casa Loma는 스페인어로 Hill House, 즉 House on the Hill 언덕 위의 집이다. 이는 1911년에서 1914년에 지어진 헨리 펠렛 경 (Sir Henry Pellatt)의 사저로 고딕 복고 양식의 저택과 가든을 일컫는데 현재는 역사적인 주택 박물관으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며 (연 65만명), 영화와 텔레비젼과 사진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박물관이 문닫는 저녁시간에는 촬영과 결혼식 같은 사적인 행사에 대여되며 매년 250여건의 행사가 치뤄진다고 한다.
사실 백년 전 주택이므로 유럽의 여느 성에 비해서 그닥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한 개인 주택으로서의 규모나 건축의 독특함은 구경할 만 한다. 다음은 이 주택의 외관이다. 정면 쪽으로 가본다.
앞마당에 Project Bookmark Canada 싸인이 있다.
이는 캐나다 문학작품이 탄생한 바로 그 장소를 찾아 작품 속의 상상과 실제의 장소를 연결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문학적인 여정 속으로 안내하는 일종의 자발적인 참여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동명의 비영리 자선단체에서 주로 기부 후원과 자원봉사로 이런 곳을 발굴하고 이 북마크 싸인을 설치한다고 한다.
여기 카사 로마에서는 토론토 태생 시인이자 아동작가인 Dennis Lee의 시 (poem) "The Cat and the Wizard"를 소개하고 있다.
Perhaps you wonder
How I know
A cat and a wizard
Can carry on so?
Well: if some day
You chance to light
On Casa Loma
Late at night,
Go up to the window,
Peek inside,
And then you’ll see
I haven’t lied.
For round & round
The rabbits dance,
The moon is high
And they don’t wear pants;
The tuna fish
Patrol the hall,
The butterflies swim
In the waterfall,
And high and low
With a hullabaloo
The castle whirls
Like a tipsy zoo!
And in the corner
If you peer,
Two other figures
May appear.
One is dressed
In a spiffy hat:
The queen of the castle,
The jet black cat.
The other’s a wizard
Of high degree.
The wizard is grinning.
The wizard is me.
(고양이과 마법사가 함께 지내는 걸 어떻게 아냐고? 음~ 늦은 밤 카사 로마에 불을 켜볼 수 있다면 창문을 타고 올라가 안을 들여다 보렴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거야. 둥글게 둥글게 토끼들은 춤을 추고 달님은 높고 훤한데 근데 바지를 입고 있지도 않아. 참치들은 복도를 순찰하듯 지나가고 나비들은 폭포에서 수영하고 있어. 와글와글 높고 낮은 소리에 캐슬은 얼큰히 취한 동물원 마냥 휘돌아가지. 구석진 곳을 잘 봐. 두 모습이 나타날거야. 한쪽은 멋진 모자를 쓴 바로 이 캐슬의 여왕님 흑단색 고양이야. 또 한쪽은 높으신 마법사가 싱긋이 웃고 있지. 바로 나야)
이건 순전히 엉터리 번역이다. 한번 쭉 읽으며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갔으니까~ㅎㅎ
시인의 예술적인 의도는 아랑곳 없이 내가 읽은 느낌만 전달한다. 그런데, 이 시를 읽고나니 이 성 (캐슬)이 다르게 보인다.
박물관으로 꾸며진 이 집 안으로 들어가 볼지 어떨지 잠시 고민하다가 우리는 패스하기로 했다.
백년 전 부잣집의 침실과 욕실과 가구들을 볼 수 있겠지만 60불 내고 굳이 들어가볼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다 (No offence, Casa Loma) 오늘 꼭 도착해야할 곳이 있어 다소 마음이 급해졌기 때문이다.
들어가보지 않아 놓친 거 많겠지만, 다시한번 건물 구경을 하고 동네 구경하는 것으로 카사 로마 방문을 마쳤다.
이제 다시 영스트리트 Younge Street로 나와 한국 식품점 갤러리아에 들러 눈에 보이는 대로 한국 식품을 담기 시작했다. 오늘 가야할 곳은 바로 킹스턴 아들네이기 때문이다.
록키에 머물고 에드몬톤을 들리고 중간 중간 점을 찍으며 토론토 까지 오는 내내 사실 내 마음 속의 목적지는 킹스턴이었다. 장소 보다 더 큰 의미는 사람이다. 내 가족, 내 자녀가 있는 곳으로, 마음이 향하고 발걸음이 향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니까.
토론토 도심에서 킹스턴 까지는 약 270 킬로. 교통체증을 감안하면 3시간 정도 거리다.
2019년 가을 코로나 직전에 밴쿠버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린 후 차를 몰고 떠나버린 아들 며느리를 무려 2년이 넘어 처음 만나는 시간이 이제 3시간 정도 전인 셈이다.
'여행_캐나다 횡단 2021년 9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횡단 D16: 킹스톤을 떠나며 천섬을 추억하며 (0) | 2021.11.15 |
---|---|
횡단 D16: 킹스턴 킹스톤 (0) | 2021.11.15 |
횡단 D14: 다시 가본 나이아가라 (0) | 2021.11.11 |
횡단 D13: 더 수에서 토론토로 (0) | 2021.11.09 |
횡단 D12: 내게 다가온 moments of Algoma (0) | 2021.11.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