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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살이

강릉 새벽시장

by 밴쿠버제니 2022. 4. 22.

남편은 강릉에서 멀지 않은 북평이라는 곳에서 출생했지만 세 살 이후 유년시절과 고등학교까지를 강릉에서 보낸 사람이다.  이후 40년도 훌쩍 넘는 세월을 서울과 밴쿠버에서 지내왔으니 강릉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오래되었지만, 그 마음에 언제나 강릉이 고향으로 살아숨쉬고 있슴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지내기로 마음 먹고 나와 남편은 서울파와 강릉파로 나뉘어져, 하루는 서울에 또 하루는 강릉에 집을 알아보는 날이 계속 되었다.  어느 날 네이버부동산에 갑자기 나타난 강릉의 한 아파트를 남편 친구에게 부탁하여 계약함으로써 우리의 갈등은 끝이 났다.

서울에서 격리를 마치고 한달 가량 지내다가 강릉에 도착한 후 에어컨 빼고는 텅 빈 아파트에 살림살이를 사들이느라 밤새 쿠팡을 뒤지고, 강릉 유일 이마트와 동네 다이소를 왕복하던 어느 날.  늘 그렇듯이 일찍 잠이 깬 아침에 남편이 새벽시장에 가보자고 했다.  이 새벽시장에 다녀오고서는 강릉에 살기로 한 결정에 대한 일말의 후회와 의심이 눈 녹듯 사라지며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제는 나의 최애 장소가 되어 매일이라도 가고싶고 강릉 오는 누구라도 데려가서 한바퀴 하고 싶은 새벽시장을 소개한다.

강릉에 처음 살아보는 내 스스로를 위해서 지도를 캡쳐해 보았다.  새벽시장은 강릉을 가로질러 흐르는 남대천 둔치 공용주차장에서 열린다.   위 지도에서 남대천 둔치와 홈플러스 사이에는 나의 또다른 (낮)마실 코스 강릉 중앙시장이 있다.  

**둔치란 '물가의 언덕' 또는 '강,호수 따위의 물이 있는 곳의 가장자리'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고수부지 보다 훨씬 정감있는 단어 같다.

새벽시장이 열리는 남대천 둔치로 들어가기 전 지나는 동네 길이다 양옆으로 사시사철 노란 (인조) 나뭇잎으로 가로등을 장식해 놓아서 볼때 마다 웃음이 나온다. 이 길 끝 짧은 터널을 통과하면 둔치 주차장이다

새벽시장이라고 꼭두새벽에 갈 필요는 없다.  우리는 대략 7시에서 8시경에 나간다.  3월 말 처음 갔을 때 둔치 주차장 언덕 위로 벗꽃나무가 도열해 서 있는데 곧 꽃망울을 터뜨릴 거 같았다.  

그 다음주 벗꽃이 활짝 피었다.

주로 평일 아침에 가니 많이 한산한 편이다. 어느 토요일 아침에 가보니 장사구역과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강릉 온지 몇 주 동안 거의 하루 걸러 시장나들이를 했다.  장터에 놓인 각종 물건을 둘러보고 이름을 묻기도 하고 먹는 방법, 손질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는데,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 가족 같은 분위기에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굳이 팔려고 애쓰지 않지만 직접 키운 식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그 굵고 거친 손마디에서 느껴지니 절로 한 봉지 사게된다.

강릉 중앙시장에 금방 튀긴 맛난 도넛이 있으니 여기서는 패스

새벽시장에는 농산물 해산물 뿐만 아니라 도넛 가게도 있고 반찬가게도 있다.  반찬가게에서 사먹은 열무김치가 아주 일품이었다.  한 봉지에 만원.  알타리는 만오천.  주차장쪽에는 뻥튀기 아저씨가 이제 반찬 샀으니 간식도 사가라고 하는 듯~ 실제로 사왔다 ㅎ

이제 몇 번 가다보니 나름 단골로 가는 집도 생겼다.  만원에 15개씩 골라담고 두어개 더 얹어주는 아주머니 과일가게와 젊은이들까지 동원한 식구가 파는 두부집이다.  2천원하는 모두부는 마트의 두배 크기이고 순두부는 한봉지에 천오백원이다.  뜨끈뜨끈하고 고소한 두부를 사들고와서 순두부 한공기씩에 모두부를 큼직하게 썰어 나눠 먹으면 그 고소함에 누구나 감탄하는 한끼 거뜬한 식사가 된다.  진한 콩국물에 손으로 썰어놓은 가는 국수를 한봉지 사들고와서 간단 콩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단골 가게 한 곳을 지나칠 뻔 했다.  혼자 동떨어져 조용히 앉아있는 계란 장수 할아버지.  두번째 사면서 어디서 오셨는지 여쭈니 모산저수지라 하신다.  거기가 어딘지 몰라도 강릉살이에 익숙해질 쯤 한번 가보고 싶은 이름으로 다가왔다.  이 계란할아버지로 인해서.

4월이 되니 갑자기 등장한 두릅나물.  아직도 개두릅과 참두릅이 헷갈리지만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그 쌉쌀하고 향긋한 맛이 일품이다.  잠시 나오고 만다고 하니 좀 넉넉하게 사서 데친 다음 냉동실에 몇 봉지 넣어두었다.  냉동 두릅이 나중에도 이 맛이 나려나 모르겠다.

내가 배운 바에 의하면 이것이 참두릅
참두릅 아래 더 진한 녹색의 개두릅이 마치 굴비마냥 엮어있다. 1킬로에 2만원 선이다
이제 두릅은 알았는데 바로 앞의 나물 이름을 물으니 그것도 모르냐고 타박하셨다 참나물이잖여~ 그렇게 많이 먹었었는데도 접시에 담긴 반찬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 숨쉬는 본연의 모습은 내게 생소하다
새벽시장 반찬가게에서 열무김치 사다 먹으니 너무 맛있어서 다시 사러가다가 할머니가 팔고있는 무우가 너무 예뻐 천원짜리 무우 사서 담근 깎두기와 두릅 데친 것과 된장에 무친 두릅 반찬

오늘 아침도 새벽시장 한바퀴하고 왔다.  뜨끈한 순두부에 열무김치와 두릅 무침을 곁들이니 아침으로 더 바랄 것이 없다.  관광으로 올 때는 몰랐던 강릉이라는 도시 속으로 이렇게 한 걸음 더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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