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단오제 8일장의 막바지 주말인지라 붐빌 줄은 기대했지만, 장터에 들어선 순간 오랜만에 보는 인파에 놀랄 지경이었다. 코로나를 뚫고 터져나온 무리들~ 물론 우리도 그들 중 일부였다.
주차 공간이 없을 거 같아 미리 연락해둔 남편 친구의 건물 앞에 안전히 주차한 건 참 잘한 조치였다.
강릉 현지인들도 3년 만에 만나는 단오장일거니 우리 외지인들은 또 언제 올 수 있을른지 모른다. 열심히 다녀보자 마음 먹으며 용감히 인파 속으로 들어가보았다.
올해 강릉 단오제를 맞이하여 강릉시에서 배포한 팜플렛이다.
나의 지론 중 하나는, 뭐든 설명서를 잘 읽어보자이다. 하다못해 선풍기나 냉장고 설명서도 유용하더라 ㅎ
남편과 아주 여러 해 전에 단오제에 한나절 들린 적이 있었는데 팜플렛을 보니 코로나로 2년을 쉬고 열리는 단오제라 그런지 체험과 놀이가 더욱 풍성한 거 같다.
강릉 단오제는 강릉을 가로질러 흐르는 남대천 양쪽 뚝방 (고수부지)에서 열리고 있었다.
강릉 남대천은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 삽당령 부근에서 발원하여 강릉시를 가로질러 남항진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지방하천을 이른다 (나무위키). 원래 남천(南川)이라 불렸던 이 하천은 물이 맑아 강릉시민들이 즐겨 이용하고 있다. 은어·칠성뱀장어 등 담수어가 많으며, 매년 열리는 강릉단오제 행사도 이 남대천 연변(沿邊)에서 행해진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남대천(南大川))]
우리에게 남대천은, 새벽시장이 열리고 중앙시장 나갈때 차를 세우고 안목해변 다리 위에 올라 바다와 만나는 물 속에 떼로 지어 다니는 물고기 구경을 하고 꽃단장을 한 다리 위를 지나 옛 철길을 걸어보고~ 그런 생활 속의 다리다. 지금은 물이 말라서 바닥이 훤히 드러나지만, 남편 말에 의하면 어린 시절 겨울이면 얼어붙은 남대천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곤 했고, 스케이트 타고 나온 뚝방에 앉아서 얼음물에 빠진 여학생이 물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보았고 그래서 그 아린 기억을 아직도 지울 수 없다는~~ 남대천이다.
단오제가 한창인 남대천변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보려는데 사람을 피해서 찍기가 쉽지 않았다.
아래는 남대천 뚝방길 양쪽 천막 속의 이모저모~
먹을 거리도 풍성하고, 눈요기를 하다 하나씩 사게되는 신기한 물건들도 많지만
강릉 단오제는 다양한 체험의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청포물로 머리를 감아볼 수도 있고, 수리취떡을 하나씩 줄서서 받아 먹거나 사먹을 수도 있다. 이외에도 부채 그리기, 전통 탈 그리기 행사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약간의 비용으로 전통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어 보는 부스도 있었다.
그리고 만난 씨름대회 현장이다. 티비에서만 보던 씨름꾼들의 겨루기가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모래판 위에서 두 덩치들이 꼼짝않고 있는 것이 그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는 직접 보니 알겠다. 그들의 거칠은 숨결과 관중들의 집중과 마침내 터지는 함성과 탄식을 들으니 현장이 주는 생생함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는데~~ 인파 속에서 까치발로 계속 보기에 힘이 들어 발길을 옮겼다.
아주 여러 해 전에 처음 왔을 때 가면극 (관노가면극)을 아주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프로그램을 보니 아직도 공연 중이지만 우리가 방문한 시간은 아니다.
여기는 그네 대회 현장~ 이 역시 대회가 열리는 시간은 아니어서 한산하다. 저 높은 그네에 올라 한복을 입고 훨훨 날 듯 타는 모습을 보았다면 좋았을 것을... 강릉단오제를 제대로 보려면 프로그램을 손에 꼭 쥐고 행사 시간을 잘 맞추어 다녀야 할 거 같다.
강릉 단오제가 열리는 남대천 전역이 먹을 거리, 구경 거리, 체험 거리로 뒤덮혀 보이지만 사실 단오제의 핵심은 한 마디로 굿판이라 할 수 있다.
단오제가 열리는 동안 벌어지는 굿의 종류만 하더라도 (프로그램에서 세어보니) 24종류다. 나열하자면, 문굿, 청좌굿, 부정굿, 하회동참굿, 조상굿, 세존굿, 중잡이굿, 축원굿, 군웅장수굿, 심청굿, 성주굿, 지신굿, 산신굿, 손님굿, 천왕굿, 천왕곤반, 칠성굿, 제면굿, 지탈굿, 용왕굿, 꽃노래굿, 등노래굿, 뱃노래굿, 환우굿 등이다. 이중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굿도 있으니 축원굿은 무려 9번 등장한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대로 보아 이때 우리가 목격한 굿은 아마 산신굿 정도였을 걸로 추정된다. 무당이나 굿에 대한 지식도 믿음도 없지만 잠시 멀찍이 들여다본 바, 머리 뒤 까지 울림이 있는 소리로 끝없이 이어가는 간절함이 장막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자리 잡고 앉은 사람들의 진지한 뒷모습이 많이 낯설었다.
이 정도에서 단오제 구경을 마치기로 누구랄 것도 없이 마음이 모아졌다.
우리로서는 짧지만 많이 치열했던 (지난 밤의 장거리 운전까지 더하자면~) 단오제 나들이였다고 자부한다.
인파를 피해서 좀 한적한 곳에서 강릉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강릉항의 한 카페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강릉항 요트 마리나가 있는 빌딩 위의 커피숍 (할리스 커피)다.
안목해변이 강릉의 커피거리로 유명하지만 우리는 주로 이곳을 찾는다. 실내가 넓어 한적한 편이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안목해변과 강릉바다가 너무 멋지다.
우리가 찾은 이 날은 단오제 여파인지 주말이라 그런지 주차가 힘들 정도로 차들로 빼곡했지만 창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푸욱 쉴 수 있었다.
이후 우리 일행은 경포대도 오르고 허난설헌 생가도 들리고 동해안 바닷길을 따라 주문진으로 가서 저녁으로 회를 먹고 다시 강릉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강릉 경포대 밤바다에서 아이들 처럼 즐겁게 웃으며 하루를 마감했다.
실컷 원없이 지낸 나날들~ 그래서 그런지 다음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때는 아주 편안하고 담백하게 헤어질 수 있었다.
'여행_남도 7박 8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D6-D7: 거제에서 강릉으로 (0) | 2022.06.30 |
---|---|
D6: 외도 보타니아 (Oedo-Botania) (0) | 2022.06.30 |
D6: Oedo 가는 길 (0) | 2022.06.29 |
D5: 남해에서 통영으로 (0) | 2022.06.26 |
D5: 남해 한바퀴 (0) | 2022.06.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