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차 수리 때문이었다. 후진하다가 기둥에 살짝 박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드디어 고치기로 약속한 7월 8일 오전 9시. 차를 맡기고나서 우리는 바다 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오전 시간이라 시내쪽은 건물 그림자가 길어 그늘을 골라다닐 수 있었지만, 곧 건물이 없어지고 논밭이 이어지는 뙤약볕 길에 많이 더웠다. 하지만, 가벼운 차림에 가벼운 배낭에 모자를 눌러쓰고 햇살 속으로 용감히 나아가는 발길이 스스로 생각해도 신선하고 뿌듯했다.
우리가 오전 중에 걸어간 강릉 길이다. 만보 정도니 그리 멀지는 않다
A-B) 도서관을 지나다
차를 타고 지나다니는 길과 걸어다니는 길거리는 많이 다르다. 인도를 걸어가다보면 만나는 가게들과 사람들과 온갖 표시판에 평소보다 서너 배는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이다. 내 눈에는 엉터리 표지판, 특히 어색한 영어 표기 등이 눈에 잘 들어와서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걸어보는 길거리는 언제나 흥미롭고 재미있다.
카센터에서 바다 쪽으로 걷는 길은 강릉의 구도심에 가까워 작은 시골도시 느낌이 풀풀 났다. 우체국도 있고 마트도 있고 미용실과 작은 가게들이 이어진다. 한참을 걷다보니 우측에 강릉시립도서관이 나타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지난달 강릉시민에게 발급되는 도서관증을 처음 발급 받고 그새 여기서 두 번 책을 대출 받았다. 다섯 권씩 열흘 간 빌릴 수 있는데 다 읽지 못해도 매일 종이책을 손에 들게되니 다 도서관 덕분이다.
C) 들판을 지나며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길 우측으로 건물이 사라지고, 벼가 자라는 너른 들판이 나타나고 멀리는 비닐하우스들도 보인다. 끝없이 난 직선도로의 나지막한 흰 펜스를 따라 줄장미 넝쿨이 이어진다. 봄날 장미가 피었을 때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분명히 차로 지나다녀본 길이건만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차에서 스치듯 보아서 그럴거다. 장미꽃이 다 떨어지고 잎만 무성한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
어느 순간 나타난 웅장한 한식 스타일 건물~ 무슨 문화재려나 했는데 알고보니 한국전력 강릉지사 건물이다. 한전과 한옥은 어감이 많이 다르지만 강릉이라는 이미지에는 맞는 건물인 듯 하다.
뒤로는 소나무 숲이 어우러지고 앞으로는 멋진 들판과 오션뷰가 있을 저 높은 누각은 강릉시민들에게 개방이 되는건지 궁금해진다. 차가 쌩쌩 다니는 길 건너편인지라 패스~~
지나다보니 "누가 한전을 적자기업으로 내몰았나"라고 쓰인 거대한 플랑카드가 내려와있다.
걸어가는 길 우편 들판에 한 무리의 장정들이 엎드린채 작업 중이다. 가까이 서서 내려다보니 감자밭이다.
감자바우들이 감자를 캐고 있다. 어제도 감자전을 먹었는데~~
D) 강릉고등학교를 지나가다
우리는 초당마을을 거쳐 가기로 하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강릉고등학교를 지나가는 길이다.
강릉고등학교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남편이 하도 자부심을 갖고 평생 자랑하는 통에 (남편의 모교다) 또 강릉 올 때 마다 각종 동문행사에 참여하다보니 마치 나도 여기 출신인 듯 느껴진다.
다른 건 몰라도 이렇게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고등학교 교정은 어디에도 없을 거 같으니 그건 인정이다.
E) 초당두부마을
강릉대로를 따라가다 초당두부마을로 들어선 초입에는 두부집 보다는 갈비집이 더 많이 보인다. 이어서 특색있는 카페 건물이 이어지고 그리고는 유명한 두부 전문점들을 만나게 된다.
F) 강문 해변
강문을 진또배기 마을이라고 부른다는데 진또배기는 솟대의 강원도 사투리라고 한다. (솟대는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랄 때, 악귀나 질병을 쫓을 때 마을 입구에 수호신의 상징처럼 세우는 나무 장대를 뜻한다)
G) 경포 해변
솟대 다리를 건너 경포해변으로 넘어가면 왼쪽으로 보이는 하얀 건물은 현대그룹에서 오래된 경포대 현대호텔을 재건축한 씨마크 (Seamarq) 호텔이다. 보기에 거창하지 않고 수수해 보여도 내부는 어마어마한 6성급 호텔이라 한다. 세계적인 건축 거장 리처드 마이어 (Richard Meier)의 설계 작품이라고 한다. 이 건물 내부는 들어가본 적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 우뚝 솓아있으면서도 주변 환경에 비해 튀지 않는 소박한 외형이 아주 마음에 든다. 경포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스카이베이 호텔과 너무 대조되는 느낌이다. (스카이베이에 대한 나의 편견이 심하다고 할 수 있지만 처음 경포대 누각에 서서 바라본 외관은 강릉시에 배신감이 들 정도로 충격이었다. 지금은 눈에 많이 익숙해졌다)
다음은 개장 첫날의 경포대 해수욕장 모습이다. 직원들이 파라솔을 설치하고 안전요원들도 근무 중인데 아직은 많이 한산한 편이었다. 군데군데 탈의실도 많이 만들어져있고 모터보터 대여소도 운영 중인데 손님이 꽤 찾는 듯 하다. 우리는 모래사장에 있는 흔들그네에 앉아 아침에 준비해온 과일과 약식을 점심으로 나눠먹었다. 한참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바다 수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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