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 월정사와 상원사를 여러 차례 다녀봤지만
오롯이 가을 단풍구경을 위해 찾기는 이번이 처음인 거 같다.
서울에서 기차로 오시는 열명의 남편동창들 때문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뉴스에서 단풍이 절정이라고 떠들어대도 그냥 지나쳤을거다.
인파가 몰릴 거고 차량으로 혼잡할 거고...
게다가 주말은 절대 피할 우리지만
손님들의 일정이 토요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10월 21일 토요일 아침의 오대산은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무려 영하 3도.
냉장고 바지에 얇은 바람막이를 선택한 나자신을 책망하며
혹시나 가는 길에 등산복 아웃렛이라도 보이려나 찾고 또 찾았지만
늘어선 차량들 옆으로 논밭은 하얗게 서리와 눈으로 뒤덮혀 있을 뿐.
월정사 주차장에서 마침 빠져나가는 자리에 운좋게 차를 댄 거만 해도 다행이었다.
계획이 엇나가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일 거다.
상원사까지 다같이 버스로 올라가려는 계획은 인파로 인해 취소되고
결국 일행은 기차역에서 월정사로 택시 3대로 들어오다 중간지점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고
우리는 월정사에서 합류했다.
선재길은 월정사 전나무숲길과 월정사를 지나 시작되어 상원사까지 이르는 약 9km의 산책길이다.
월정사 매표소에서 출발하면 10.7km란다.
성인 1인당 5천원씩 받던 입장료는 올해 5월로 폐지되고 주차비만 5천원을 징수하고 있다.
월정사를 지나 선재길 입구로 가는 길이다.
붉게 물든 나무들이, 그래 너도 왔구나, 단풍구경 잘 하고가~ 라고 인사하는 듯 하다.
다음은, 선재길에 들어서서 섶다리에 이르기 까지의 오대산 단풍 사진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단풍~~ (고은님 죄송합니다 ㅎ)
선재길의 단풍을 사진으로 보니 화려해보이지만 산 전체가 불타는 모습은 아니었다. 선명한 나무 위주로 골라찍은 거니 사진으로 전체를 보면 안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단풍이 아니더라도, 어느 계절에 오더라도, 경사가 심하지 않은 아름다운 숲속으로 남녀노소 부담없이 걸어가볼 수 있는 멋진 산책길이 선재길이다. 주말을 피해서 조용히 천천히 다시 걷고 싶은 길이다.
월정사를 지나쳐 전나무숲길로 들어갈까 하다가 역시 인파로 마음을 접었다.
전나무숲으로 이어지는 길을 월정사 쪽에서 바라보며 사람 적을 때를 한참 기다려 한 컷 찍어본다. 마음 속으로 빛이 들어오는 듯 하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다양한 나뭇잎은 내 수채화 파레트 32색으로 표현불가할 듯 하지만 언제가 그려보고 싶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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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리고 이어진 밥상은 송어회와 송어매운탕~ 평창군 속사에 있는 물안골 송어횟집이다.
송어회도 신선했지만, 곁들어나온 직접 기른 로메인상추와 누룽지튀김이 예술이었고 나중에 나온 매운탕도 맛있었다.
거울 같은 강물에 송어가 뛰노네~ 슈베르트가 경쾌하고도 마음 아프게 묘사한 송어잡이가 잠시 마음 한켠 맴돌다가 얼른 사라졌다.
점심 겸 저녁을 배불리 먹었건만 서울로 돌아가는 ktx예약시간이 많이 남아 찾은 엘림커피숍은 물가의 거대한 궁전 같았는데.. 진부는 깡시골이라 생각했던 나의 잘못을 고쳐주려는 듯, 14명이 주문한 카페라테, 아메리카노, 망고스무디, 감자빵, 고구마빵 모두 훌륭했다. 특히 감자빵 맛있었슴. 역시 강원도는 감자여~
춥고 혼잡하여 어설프게 시작한 하루가 온몸을 물들이며 반겨주는 나무들의 환대에 몸과 마음이 녹고, 라떼와 감자빵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지으니 더이상 바랄 게 있으랴. 더우기 돌아오는 길은 짧아 순식간에 집에 들어서니 이또한 감사할 일이다. 다만, 다 돌아보지 못한 선재길을 조용한 날 다시 걷고 싶다. 숲속을 걷다보면 지혜와 깨달음 까지는 몰라도 왠지 조금은 더 착한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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