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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가르침과 배움 (연습장에서)

by 밴쿠버제니 2021. 4. 2.

~~ 연습장 죽돌이의 소소한 관찰 ~~


(1)
몇 년 전 기억이다.
어느 한국 남자 아이가 있었다.  나이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
키는 보통이고 몸이 호리호리하고 잘 생겼다.
오후 느지막히 연습장에 나가면 늘 그들이 있었다. 
열살 쯤 된 그 아이와 아버지.
공을 여러 박스 가져다 두고 끊임없이 스윙을 했다.  
아버지가 공을 치는 것은 거의 보질 못햇다.
아이 바로 뒤에 서서 조용한 말투로 얘기하면서 아이를 주시했다.
둘 다 지치지도 않은 듯, 화장실 갈 필요도 없는 듯.  아이는 불평도 없다.
아이의 스윙은 (내가 보기에) 나무랄 데가 없고 공도 똑바로 멀리 나갔다.
저 아이는 주니어 대회를 나가고 어쩌면 프로로 데뷔하겠구나 싶다가도
우리가 놀맨놀맨 2박스나 치고 나가기 까지 
변치않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 조용함에 약간 서늘해졌다.

(2)
이 아버지는 자주 두 아이를 데리고 오는데

작은 꼬마가 매고있는 아이용 골프클럽이 땅에 끌릴 듯 하다. 
연습장 앞뒤로 자리를 차지하고서
공을 부어주고는 모두 각자 자리에서 공치기 바쁘다.
아이들은 공을 손으로 티 위에 올리고는
맘대로 이런 저런 채를 뽑아서 휘두른다.
휘두르는 가운데 공이 맞기도 하고 
땅만 쳐서 공은 그대로 있는 채 몸이 360도로 빙글 돌기도 한다.
어쩌다 공을 떠나보내는 형에게 감탄하며 자리를 바꾸어도 보고
뒤돌아 아빠의 멋진 스윙을 지켜보기도 한다.
아버지의 반응은 딱 한가지다.
아이의 공이 티를 떠나기만 해도~ That is great. 
You are doing just great.

(3)
연습장이 다소 붐벼서 끄트머리 쪽으로 가면 
연습장 소속 레슨 프로가 바로 앞에서 레슨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저 프로가 보는 내 스윙이 얼마나 우스울까 싶어
더더욱 힘이 들어가는 부작용도 있지만
레슨 내용이 궁금해서 귀를 기울여볼 때도 있다.
그날 레슨을 받는 사람은 신체도 건장한 백인 남성이었다.
체구로 봐서는 3백 때릴 거 같은데
이날 레슨프로가 가르치는 것은
내 몸 앞 90도 각도 안에서 채가 지나가는 것만 
계속 얘기하고 있었다.
레슨을 마치고 레슨프로가 가고 난 후에야
혼자서 분노의(? 나의 느낌) 풀스윙을 하는데 아주 잘 쳤다.

요새 혼자 연습하면서
수많은 유튜브를 통해 알게된 수많은 단계별 스윙 폼 보다도
내 앞에서 채가 지나가는 느낌을 내 속에서 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본다.

(4)
바로 며칠 전 한가한 연습장에
6-7명의 한국 남녀 젊은이들이 채를 한두 개씩 들고와서
내 앞으로 몇 자리 건너 주욱 자리를 차지했다.
다들 골프채라고는 처음 잡아본 거 같고
그중 한 명이 골프를 알고 가르치는 상황이었다.
골프스윙의 기초를 설명하고 돌아가며 공을 때려보는데
물론 공을 맞추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친구는 우연히 잘 맞은 공이 날아갈 때도 있었다.
이렇게 놀다가 갔으면 즐거운 기억이 되었으련만~~
가르치는 젊은이는 한 명 한 명에게
본인이 알고 있는 골프 용어, 골프 지식을 총동원해서
올바른 풀스윙의 자세에 대해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려 애썼고
젊은 친구들은 채를 처음 잡은 날 듣는 생소하고 거창한 지식에 의거한
완벽한 자세를 만들어내려 애쓰며 어려워하고 있었다.

오호 통재라~
폼은 다 무시하고 그저 공과 채가 만나는 느낌을 몸으로 느껴보라고
뛰어가서 외치고 싶었다.

 

(5)
그건 내 기억 때문이다.
순발력 꽝이고 몸치인 내가 처음 골프채를 잡았을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수많은 원리와 지식들
책과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공 하나를 치기 위해 생각해야하는 자세를 적어본 적이 있었다.
무려 30가지가 넘었다.
단 1.3초면 끝나는 이 스윙에서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골프는 여전히 몸 보다는 머리가 앞선다.
많이 떨쳐냈다고 믿었건만
시시각각 엄습해 나를 사로잡고 나를 긴장시킨다.

공아 넌 아무 잘못이 없단다
너와 많이 친하고 싶단다



*******************

재미로 운동삼아 다니는 연습장에서 마주친 몇 가지를 적어보았다.
문제점들을 나열하거나 쉽게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보이는 상황에 불과하므로.

뒤늦게 골프를 접하며 내게 떠오른 생각은,
배움은 즐겁게 스스로 하는 가운데 머리가 아닌 근육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과
가르침은 내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배우는 자의 내면을 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거다.


근데, 깨달음은 언제나 너무 늦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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